기억 공작소Ⅲ『최수환』展
어둠속에서 빛을 바라본다. 손에 잡힐듯한 선명한 빛은 반짝임을 넘어 부유하는 이미지로 시각적 환영을 연출한다. 빛으로 형상된 풍경의 이미지들은 보는 이의 움직임 혹은 빛의 발산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되고 입체, 원근, 사실 등 다양한 조형적 요소들을 구체화 시키며 비실제적인 공간으로 빠져들게 한다. 화려한 빛의 향연을 보고 있는 순간 문뜩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인공의 빛에 대한 실존적 의문을 가지게 한다. 전원을 끄면 아무것도 없는 어둠일 공간에서 실존의 부재를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이 허상으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에서 오히려 감각의 예민함을 회복하며 사물에 대한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화려한 빛 형상 속에 배제된 감각과 사유를 직면하는 진실을 연상케 하는 역설적인 접근이다.
뉴머티어리얼스(New materials)
새로운 재료·재질을 의미하는 말로 신소재로 번역이 되기도 하는 용어로 미술에서는 물질의 수용을 뜻한다. 20세기 초반부터 미술은 재료의 포용성을 가지며 쓰레기나 기타 물질 그리고 정크 아트와 같은 여러 종류의 아상블라주까지 재료의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다. 종래에는 조각과 회화의 전통적 차이까지 흐리게 만들고 금속과 플라스틱 등의 산업제품 및 전기기구 등을 활용하면서 그 범위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그중 뉴머티어리얼스를 미술에 적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는 ‘라이트 아트(Light Art)’는 빛의 예술, 전광을 이용한 패턴과 빛의 변화 등을 선보이며 산업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LED(발광다이오드)의 상용화는 미술의 고정된 가치를 넘어서는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최수환 작가도 우연이지만 필연적으로 인공의 빛을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유년 시절 유달리 기계에 관심이 높았던 작가는 전기와 관련된 제품을 겁 없이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즐겨 많은 제품을 못 쓰게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미국 유학시절 우연히 손목을 다쳐 붓질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조바심 속에, 눈에 띈 것이 검정색 종이와 바늘이었다. 바늘로 종이에 구멍을 뚫고 조명에 비추어 본 후의 전율은 지금까지 생생하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이렇게 예술가의 창작은 미술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나 시대에 대한 고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기인하거나, 가벼운 유희에서 나름의 생존방법으로 풀어내는 경우도 많다. 최수환 작가의 경우에도 꼼꼼한 성격과 인내력, 지속적 관심으로 출발한 LED의 수용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실체적 이미지를 숨길 수 있는 환영의 도구이자 직관과 감정, 이성적 사고가 조화롭게 적용되는 최적의 뉴머티어리얼스로 작동되고 있음이다.
명상의 시간에서 소통의 시간으로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초상이나 정물 등 주변의 오브제를 빛으로 재현하였고, 이후 정교한 아라베스크 무늬같은 장식적이면서 추상적인 소재를 평면에서 입체를 넘나드는 환영적인 작업으로 연결을 시켰다. 그러나 최근 작품에서는 우리가 흔히 산책하며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소재를 변화시키며 “우리는 매일 미디어의 홍수에 살고 있고 자극적인 시각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며 매일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전시실만이라도 관람객에게 편안함과 명상의 시간으로 느끼게 하고 싶다.”라고 작가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동시대미술의 난해함, 일방적인 소통, 가치의 사유화 등 전통적 형식에서 변형된 미술의 자극성에서 벗어나 관람객들에게 편안한 소통으로 대면하고 싶은 것이다.
최수환 작가의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이미지를 찍거나 만들고 흑백으로 전환한 뒤 포토샵으로 원하는 명도로 조정하고 프린트한 후 라미네이터판에 붙인다. 그리고 음영에 따라 0.35~3㎜ 드릴을 이용해 천공을 시작한다. 이때 일반적으로 가장 힘든 과정이 천공하는 작업이라 생각하겠지만 작가는 힐링 포인트라고 말한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 수개월동안 수만개의 구멍을 뚫는 과정이 명상(meditation)의 시간이고 잡념을 없애는 수련의 시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ED를 부착할 때 또 하나의 민감한 과정으로 빛 조절을 손꼽는다. 필라멘트 전구의 감성적인 빛과 다르게 LED는 폭력적이고 냉정한 빛이기 때문에 컨트롤러를 부착하거나 맞는 제품을 설치하여 빛온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최수환 작가는 쉽사리 많은 전시를 보여줄 수 없다. 대구에서는 10년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모두 미발표 신작으로 ‘라이트 아트(Light Art)’ 광원자체의 효과를 이용한 'Emptiness' 연작시리즈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빛의 근원적인 속성에 다가갈 수 있는 감각적 체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조동오
DOWNLOAD PRESS RELEASE ()